여성질환
출산 후 손목·무릎이 시리다면, 시기별 산후풍 관리법
출산 후 몇 주가 지나면서 손목이 시큰거리고, 무릎에 바람이 드는 것 같고, 여름인데도 몸이 으슬으슬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. 이처럼 출산이나 유산 뒤에 관절과 근육이 아프고, 시리거나 저리며, 땀이 많아지고 쉽게 지치는 증상을 통틀어 산후풍(産後風) 이라고 부릅니다.[1]
산후풍은 원래 민간에서 쓰던 말로, 화병처럼 우리 문화의 특성이 담긴 한의 진단명입니다.[1] 한 의료기관의 1년간 외래 환자 가운데 산후풍으로 분류된 환자가 13.2%를 차지했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흔하고,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그 중요성은 여전합니다.[1]
다행히 산후풍은 회복 시기에 맞춰 몸을 돌보면 상당 부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. 먼저 출산 후 관절이 왜 약해지는지 짚어 보고, 출산 직후부터 6개월까지 시기별로 무엇을 지키면 좋은지 차례대로 정리했습니다.
출산 후 관절이 약해지는 이유: 릴랙신 호르몬과 기혈의 소모
임신 중에는 분만을 위해 골반 관절을 느슨하게 만드는 에스트로겐, 릴랙신 같은 호르몬이 늘어납니다. 이 호르몬은 골반뿐 아니라 온몸의 관절에 작용해, 출산 뒤에도 한동안 관절이 외부 충격에 약한 상태로 남습니다.[1] 여기에 임신 중 늘어난 체중은 허리와 무릎, 발목에 부담을 주고,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동작은 손목과 팔꿈치, 어깨를 혹사시킵니다.[1]
실제로 임신·출산과 관련해 손목 엄지 쪽 힘줄에 염증이 생기는 손목 건초염은 산모 100명 중 약 2명에게 나타났고, 30세 이상, 쌍둥이 임신, 제왕절개 분만에서 더 흔했습니다.[3] 한방병원을 찾은 출산 초기 산모들의 진단을 보아도 근골격계 증상이 70% 이상을 차지했고, 그중 발목과 발의 관절통이 가장 많았습니다.[5]
한의학에서는 이를 임신과 출산으로 기혈(氣血)이 크게 소모된 상태로 봅니다. 기운과 혈이 비어 있는 몸에 찬 기운이나 습기 같은 외부의 나쁜 기운(외감, 外感)이 들어오고, 특정 관절을 무리하게 쓰고, 육아 피로가 쌓이면 산후풍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.[1] 흥미롭게도 너무 덥게 몸조리를 해서 땀을 지나치게 흘리는 것 역시 몸의 진액과 방어하는 기운(위기, 衛氣)을 상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힙니다.[1]
1단계 출산 직후~2주: 누워만 있지 말고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
자연분만을 했다면 출산 후 몇 시간 안에 골반저근 운동과 가벼운 복부 운동, 짧은 거리 걷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.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출산 후 7~10일 안에 일상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체력 유지와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.[1] 방에 누워만 있는 것보다 적당히 걷는 것이 오히려 관절과 근력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.[2]
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'덥게'와 '따뜻하게'는 다릅니다. 실내외 온도 차가 5도 이상 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, 너무 더운 곳에서 땀을 많이 흘리면 오히려 탈진할 위험이 있습니다.[2] 찬 바람에 직접 노출되는 것은 피하되,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덥게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.[1]
한의학의 산후조리에는 '먼저 어혈을 풀고, 그다음에 보한다' 는 원칙이 있습니다. 출산 후 자궁에 남은 어혈(瘀血)을 내보내는 생화탕(生化湯)은 보통 산욕 초기 2주 안에 쓰고, 이후 소모된 기혈을 채우는 보허탕(補虛湯) 등으로 이어 갑니다.[1] 다만 산모마다 허실(虛實)이 달라 일률적으로 보약부터 먹는 것은 맞지 않으므로, 몸 상태를 보고 정해야 합니다.[1]
2단계 2~6주: 손목과 허리를 지키는 수유·육아 자세
이 시기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손목과 목, 허리에 부담이 쌓입니다. 손목을 비트는 동작, 쭈그려 앉기,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고개를 떨군 자세처럼 특정 관절에 무리가 가는 자세는 되도록 피해야 합니다.[1]
수유할 때는 엄마가 아기 쪽으로 몸을 기울이기보다, 쿠션이나 베개로 아기를 가슴 높이까지 올려 엄마 쪽으로 당겨 오는 것이 기본입니다. 아기의 귀와 어깨, 엉덩이가 일직선이 되게 하면 아기도 젖을 잘 물고 엄마의 목과 등도 편합니다.[1] 관절이 아픈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자세는 다음과 같습니다.[1]
- 미식축구공 자세: 허리 주변에 수유 쿠션을 두고, 아기를 옆구리에 끼듯 안아 쿠션에 체중을 싣습니다. 손목과 손에 아기 무게가 실리지 않아 손목 통증이 있을 때 특히 좋습니다.
- 뒤로 기대어 수유하는 자세: 엄마가 비스듬히 기대 눕고 아기가 엄마 배 위에 엎드려 젖을 먹습니다.
- 옆으로 누워 수유하는 자세: 엄마와 아기가 배를 맞대고 옆으로 누워 젖을 먹습니다.
- 수유 중에는 손목을 꺾지 말고, 가슴 아래에 작은 수건을 말아 넣으면 손으로 가슴을 받치지 않아도 됩니다.
씻는 것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.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다면 머리를 감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고, 욕조에 몸을 담그는 탕목욕은 출산 후 4주 이상 지난 뒤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.[2] 오래 목욕하면 땀을 많이 흘리고 혈압이 떨어질 수 있으니 짧게 하고, 목욕 뒤에는 바람을 직접 쐬지 않도록 합니다.[1]
3단계 6주~3개월: 운동량을 늘리고 근력을 되찾는 시기
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이 시기부터는 운동량을 단계적으로 늘립니다. 일반적으로 출산 1~3개월 후에는 활동적인 운동을 시작할 수 있고, 제왕절개를 했다면 복부 운동은 시기를 조금 늦춥니다.[1] 꾸준한 신체 활동은 출산 후 회복 기간을 줄이고, 산후 우울을 예방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.[4]
수유 전후로 손목, 팔꿈치, 어깨, 목과 허리를 풀어 주는 스트레칭과 가슴 근육을 늘리는 동작, 가벼운 근력 운동을 하면 육아 자세에서 오는 통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.[1] 허리 통증이 이어진다면 출산 후 4~12주에는 근육과 근막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근막 추나요법이 고려됩니다.[1]
다만 이 시기에도 관절은 완전히 단단해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. 그래서 출산 후 추나 치료는 주변 근육과 인대를 충분히 풀어 준 다음 부드럽게 진행하고, 느슨해진 관절을 세게 교정하거나 잡아당기는 방식은 피합니다.[1]
4단계 3~6개월: 통증이 계속된다면 산후풍인지 확인하기
출산이나 유산 후 6개월 안에 시작된 관절·근육 통증과 시림, 저림 같은 감각 이상이 계속된다면 산후풍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.[1] 이 시기에는 근막 추나와 함께 약해진 근육을 키우는 근력 운동을 더해, 관절을 받쳐 주는 힘을 되찾는 것이 중요합니다.[1]
한편 출산 후 통증과 피로가 모두 산후풍 때문은 아닙니다. 갑상샘 기능 저하, 류마티스 관절염, 산후 우울증처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다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있어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.[1] 손가락 관절이 붓고 아침에 오래 뻣뻣하거나, 극심한 피로와 함께 체중 변화가 크거나, 기분이 가라앉아 일상이 힘들다면 먼저 정확한 검사를 받으시길 권합니다.
한의학에서 보는 산후풍의 다섯 가지 유형과 치료
같은 산후풍이라도 몸 상태에 따라 접근이 달라집니다. 한의학에서는 산후풍을 크게 혈허(血虛), 비위허(脾胃虛), 신허(腎虛), 풍습(風濕), 혈어(血瘀) 의 다섯 유형으로 나눕니다.[1] 출산으로 혈이 부족해진 경우, 소화 기능이 약해져 기운이 떨어진 경우, 타고난 바탕이 약해 허리와 무릎이 시린 경우, 찬 기운과 습기가 관절에 스민 경우, 어혈이 정체된 경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.
유형에 따라 혈허에는 사물탕(四物湯)이나 황기계지오물탕(黃芪桂枝五物湯), 비위허에는 향사육군자탕(香砂六君子湯)이나 보중익기탕(補中益氣湯), 풍습에는 오적산(五積散) 등을 바탕으로 처방을 정하고, 아픈 부위에 맞춰 약재를 더하고 뺍니다.[1] 산후 몸 통증과 감각 이상에는 소염진통제보다 한약 치료와 뜸 치료가 고려되고, 산후 허리 통증에는 부항 치료가 높은 근거 수준으로 권고됩니다.[1]
모유 수유 중이라면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. 독성이 있는 약재는 쓰지 않고, 마황·백작약·인삼·감초처럼 젖의 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재는 신중하게 고려합니다.[1] 수유 여부와 아기의 상태까지 함께 살펴 처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.
옛 의서 《천금요방(千金要方)》은 "산후 100일 동안은 조금도 근심하지 말라"고 했습니다.[1] 산후풍 관리는 결국 몸과 마음이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일입니다. 시기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고, 관절을 아끼는 자세를 익히고, 불편함이 오래가면 참지 말고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.
자주 묻는 질문
- Q. 모유 수유 중인데 한약을 먹어도 괜찮을까요?
- A. 수유 중에도 한약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, 아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재는 빼고 젖 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재도 신중하게 조절해야 합니다. 진료받을 때 수유 중이라는 사실과 하루 수유 횟수, 아기의 상태를 꼭 알려 주세요.
- Q. 제왕절개로 출산했는데, 시기별 관리 일정이 똑같나요?
- A. 걷기나 손목·어깨 스트레칭 같은 가벼운 활동은 비슷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, 복부에 힘이 들어가는 운동은 수술 부위가 회복된 뒤로 시기를 늦춰야 합니다. 상처 회복 정도에 따라 개인차가 크므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운동 강도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.
- Q. 출산한 지 1년이 지났는데, 그때부터 이어진 통증도 산후풍으로 치료할 수 있나요?
- A. 출산 후 6개월 안에 시작된 증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산후풍의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. 다만 시간이 오래 지났다면 다른 관절 질환이 함께 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, 통증 부위와 양상을 다시 확인한 뒤 치료 방향을 정합니다.
참고문헌 · 출처
- 임상 가이드라인 산후풍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
한국한의약진흥원 · 대한한방부인과학회 집필 · 2024 - 공공기관 자료 '산후풍'예방, 제대로 알고 하자!
한국건강증진개발원 · 2015 - 학술 문헌 Incidence and Risk Factors for Pregnancy-Related de Quervain's Tenosynovitis in South Korea: A Population-Based Epidemiologic Study
PubMed (NCBI) · Clinics in Orthopedic Surgery · 2023 - 임상 가이드라인 Physical Activity and Exercise During Pregnancy and the Postpartum Period: ACOG Committee Opinion, Number 804
미국산부인과학회 (ACOG) · Obstetrics & Gynecology · 2020 - 학술 문헌 일개 한방병원에 내원한 산욕초기 산모의 한국표준질병・사인분류 분석
KCI 한국학술지인용색인 · 대한한방부인과학회지 · 2019